암에 대한 높은 저항력을 지닌 코끼리 유전자
모든 살아있는 세포는 분열할 때마다 DNA에 돌연변이가 발생할 수 있고, 이런 돌연변이는 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만약 모든 세포가 암을 유발하는 돌연변이를 일으킬 가능성이 비슷하다면, 더 많은 세포를 가지고 있거나 더 오래 사는 동물들이 더 많은 세포분열을 할 것이므로 작거나 짧게 사는 동물보다 더 높은 암 발병률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1977년 리차드 페토(Richard Peto)라는 사람은 인간과 생쥐가 비슷한 암 발병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제, 인간은 쥐보다 세포가 1,000배나 많고 30배나 더 오래 살며, 또 다른 예로 코끼리 또한 인간보다 몸집이 100배 더 크고 60~70년을 살지만 암 발병률은 인간보다 현저히 낮다. 페토는 진화의 개념에서 이를 설명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인간은 쥐보다 더 크고 오래 살 수 있도록 진화되었고, 암에 저항할 수 있도록 진화되었다는 가설이다. 코끼리와 같이 몸집이 크고 오래 사는 동물들에게 암 저항성이 발견되는 것을 ‘페토의 역설(Peto’s Paradox)’이라고 부른다.
유타대학의 연구팀과 애리조나 대학의 생물학자 카를로 밀리(Carlo Maley) 박사는 ‘페토의 역설’을 지지하는 최초의 경험적 데이터를 제공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암 치사율이 신체 크기나 수명에 따라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였고, 오히려 더 크고 수명이 긴 동물에게서 암이 덜 발병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인간의 암 치사율이 11~25%인데 반해 코끼리는 5% 미만이었다. 연구팀은 5,500만 년을 살아온 코끼리의 유전체 연구를 통해 새로운 암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연구는 아프리카코끼리의 유전체를 조사하여 종양 유전자와 종양 억제 유전자의 변화에 대해 분석했다. 종양 억제 유전자와 종양 유전자는 암 형성에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며, 코끼리의 잠재적 암 저항 메카니즘을 설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연구 결과, 코끼리가 많은 양의 종양 억제 유전자 TP53을 발생시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TP53은 암을 축적하여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세포를 보호하는 능력 때문에 “유전체의 보호자(Guardian of the Genome)”라고 불린다. TP53은 DNA가 회복될 때까지 세포 분열을 막음으로써 DNA 손상이나 전암(pre-cancer)에 대응한다. 세포가 DNA를 고칠 수 없다면, TP53은 세포를 ‘세포 자멸(Apoptosis)‘이라는 과정을 통해 죽게 하는데, 이는 손상된 세포를 희생시킴으로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돌연변이 세포의 번식을 예방하는 것이다.
TP53 유전자 사본 하나에 돌연변이가 있는 리-프라우매니증후군(Li-Fraumeni Syndrome) 환자는 90% 이상의 암 발병률의 위험이 있다. 코끼리는 자연적으로 인간보다 20배나 많은 TP53 유전자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암 발생률이 코끼리(~5%), 인간(~50%), 리-프라우매니증후군 환자(~90%) 라는 사실을 통해서도 TP53 유전자가 암 예방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구팀은 유타주의 Hogle 동물원에 있는 아프리카코끼리와 링글링 서커스의 아시아 코끼리의 혈액을 채취하여 방사선 노출을 통한 DNA 파손을 일으킨 후, 파손된 DNA가 인간의 DNA에 비해 얼마나 빠르게 회복되는지 관찰했다. 연구팀은 코끼리의 세포가 인간의 세포보다 DNA를 더 빠르게 회복시키리라 예측했지만, 코끼리 세포와 인간 세포의 DNA 회복 속도는 비슷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인간의 세포보다 코끼리의 세포가 더 많은 세포 자멸(Apoptosis)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더 많은 세포 자멸을 일으킨다는 것은 TP53이 암세포가 될 위험이 있는 세포를 제거함으로써 암 발생률을 낮춘다는 의미가 있다. 이번 연구를 통해서 연구진들은 효과적인 암 치료법이나 암 예방법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