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ce

모기의 씨를 말리는 유전자 드라이브

장종엽엔에스 2015. 12. 18. 21:43

KISTI 미리안 글로벌동향브리핑 2015-12-11
영국의 과학자들은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Anopheles gambiae)의 유전자를 변형하여, 불임 유전자를 다른 모기들에게 퍼뜨리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A. gambiae는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이남에서 말라리아를 퍼뜨리는 주범으로, 전세계의 말라리아는 대부분 이놈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자들은 A. gambiae의 유전자를 변형하여 임신을 못하게 한 다음, 이 불임유전자가 모든 암컷 새끼에게 유전되도록 만들었다. 《Nature Biotechnology》에 발표된 이번 연구는 유전자 드라이브(gene drive)를 이용한 것으로(참고 1), 미국의 연구진이 "유전자 드라이브를 이용하여 말라리아병원체에 저항성을 띤 모기를 만들었다(참고 2)"고 보고한 지 불과 2주만에 발표됨으로써 전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CL)의 토니 놀란 박사(분자생물학)와 안드레아 크리산티 박사(매개체생물학)가 이끄는 연구진은 A. gambiae를 연구해 오던 중 임신 유전자(임신에 관여하는 유전자) 3개를 발견했는데, 이 유전자들을 변형시킬 경우 암컷 모기의 불임을 유도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암컷 모기가 불임이 되려면, 임신유전자 한 쌍 모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야 한다(수컷 모기의 경우, 해당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 그런 돌연변이는 자연선택에 의해 집단의 유전자 풀(pool)에서 사라져 버린다. 왜냐하면 두 개의 돌연변이 유전자를 보유한 암컷은 새끼를 낳지 못하지만, 임신이 가능한 암컷들은 건강한 유전자를 자손에게 물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전자 드라이브가 개입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 경우, 하나의 불임유전자를 가진 새끼는 다른 염색체에 그 유전자를 자동으로 복사하므로, 결국 두 개의 돌연변이 유전자를 보유하게 된다. 따라서 불임 유전자는 모기 집단 전체에 신속하게 퍼져나간다(유전자 드라이브는 CRISPR–Cas9라는 유전자편집 기법에 의존한다. 모기의 유전자에 돌연변이 유전자와 함께 CRISPR–Cas9 유전자를 도입하면, CRISPR–Cas9 시스템이 돌연변이 유전자를 다른 염색체에 복사하게 된다).

유전 과정을 해킹하라

선행연구에서는 CRISPR–Cas9를 이용하여 효모, 초파리, 기타 모기에게 유전자 드라이브를 도입한 바 있다. UC 어바인의 앤서니 제임스 박사(분자생물학)가 이끄는 연구진은 지난 11월 23일 PNAS에 기고한 논문에서, "CRISPR–Cas9를 이용한 유전자 드라이브로, 인도산 말라리아 모기에게 항체 유전자(말라리아 병원체에 대항하는 항체를 코딩하는 유전자)를 퍼뜨리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보고했다.

놀란 박사와 크리산티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먼저 실험실에서, 3개의 임신유전자 각각을 변형시키는 유전자 드라이브를 설계했다. 그리고 이 유전자 드라이브를 암컷과 수컷 모기에게 도입해 보니, 몇 세대가 지난 후 암컷과 수컷 자손들은 모두 3개의 불임유전자를 한 쌍식 갖게 되고, 모든 암컷들은 새끼를 낳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실 연구에서 성공을 거둔 연구진은 야외로 자리를 옮겨 유전자 드라이브의 위력을 테스트했다. 연구진은 야외에 커다란 망(網)을 설치한 다음 600마리의 모기를 풀어놓았다(이중에서 절반은 정상 모기, 나머지 절반은 불임 유전자 드라이브를 보유한 모기였다). 그러자 4세대가 지난 후, 75%의 모기들이 불임유전자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연구진이 이론적으로 예측한 유전자 드라이브의 전파속도와 일치했다.

"이번 연구는 매우 흥미로우며 아름답기까지 하다. 매년 1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말라리아에 걸려 그중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는데, 어느 누가 이번 연구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겠는가?"라고 하버드 대학교의 케빈 에스벨트 박사(진화공학)는 말했다. 에스벨트 박사는 효모와 선충을 대상으로 유전자 드라이브를 연구해 왔다.

"모기를 멸종시키는 것은 말라리아 병원충에 대한 저항성을 퍼뜨리는 것보다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러나 모기를 멸종시킬 경우 말라리아병원충에 커다란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완전히 다른 숙주를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말라리아 병원충이 이에 대한 대응책을 진화시킬 것인지는 상상하기 어렵다"고 에스벨트 박사는 말했다.

현재로서, 유전자 드라이브를 이용하여 말라리아를 통제하는데 기술적 어려움은 거의 없다. 남은 문제라고는 `아프리카와 기타 지역에서 언제 어떻게 테스트를 할 것인가` 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놀란 박사는 유전자 드라이브의 현장실험 가능성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성급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기반을 마련하고 능력을 배양하는 단계다. 최소한 내년까지는 현장실험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그는 말했다.

※ 참고문헌
1. Hammond, A. et al. Nature Biotechnol. http://dx.doi.org/10.1038/nbt.3439 (2015).
2. Gantz, V. M. et al. Proc. Natl Acad. Sci. USA http://dx.doi.org/10.1073/pnas.1521077112